디뮤지엄, 미술전시회 ‘I draw :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리뷰
디뮤지엄, 미술전시회 ‘I draw :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리뷰
  • 강혜라 에디터
  • 승인 2019.06.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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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하면 동시에 느껴지는 양가감정이 있다. 바로 ‘즐거움’과 ‘어려움’. 그림은 고귀하고 예술적이기에 끌리지만 쉽게 다가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특히 작품으로 마주할 때는 더욱 그렇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고고하게 걸려 있는 작품을 보면 왠지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건 당연히 전시회에 입장하는 방문자의 답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리기’라고 한다면? 어려운 작품이 아닌, 우리 일상의 행위가 된다. ‘그리기’는 초등학교시절 손에 쥘 수 있음에 행복했던 36색 크레파스로 무언가를 끄적이는 모습이다. ‘그리기’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쳤더니, 글자는 뒤로하고 괜히 책 귀퉁이를 채우고 싶은 마음에 완성하는 낙서다. ‘그리기’는 오늘따라 눈에 들어오는 친구의 얼굴을 따라 그려보고는 연습장을 뜯어서 선물하게 되는 ‘일상’이다.

‘I draw :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는 어렵고 복잡한 전시회가 아니다. 그리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일상과 작가들의 일상을 돌아보며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작은 여행이다. 에디터는 지난 주말,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9월 1일까지 이어지는 ‘I draw :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전시회에서 16인의 작가들의 세계로 잠시 여행을 떠났다. 작은 안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세 가지 장면을 꼽았다. 

 

장면 하나, 작가의 방에 발을 들이다

16인의 작가를 만날 때마다 그 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듯한 느낌은 디뮤지엄의 똑똑한 공간적 연출 덕분이다. 약 350여 점의 작품은 두 층으로 이뤄진 디뮤지엄의 전시실에서 구성되었다.  전시실의 높이는 최소 4m에서 최대 8m에 달해 작품이 가진 이야기를 극대화시키는데 한몫했다. 기둥이 없는 점도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더욱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다. 

공간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작품 전시 중 하나는 페이 투굿의 ‘드로잉 룸’이다. 방에 들어서면 빛 바랜 듯한 톤의 직물이 벽면 전체에 걸려 있어 눈에 띈다. 전시실이 높아 고개를 들어야 그 길이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천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된 방의 구조, 그 속을 빈틈없이 채운 갖가지 사물들, 촘촘한 직물이 주는 중량감이 시선을 압도한다.

전시실에는 실제로 양탄자, 테이블, 의류 같은 친근하면서도 소박한 오브제가 주변에 설치되어 분위기를 더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단조롭고 균일한 색조로 이뤄져 몰입감이 높다. 사물과 천이 주는 빈티지스러움은 그의 과거를 짐작케 한다. 그의 작업 공간과 같은 ‘드로잉 룸’에서 작가가 자유롭게 상상하며 방을 거니는 모습을 떠올랐다. 

우리가 어떤 방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각이지만, ‘냄새’도 그에 못지 않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적 친구네 집에 방문하면 꼭 그 집만의 냄새가 느껴지곤 했다. 친구 방에 들어가면 그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코를 한 번 벌름거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존재가 느껴지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향기’는 우리의 기억과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다. 

향기 덕분에 작가가 없어도 작가의 존재를 느낀다. 작품이 주는 이미지에 그에 걸맞은 향이 더해지니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전문 조향사들이 엄선한 향을 맡으며 방을 거닐다 보면 마치 작가로부터 환대를 받는 느낌이 든다. 이번 미술전시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작가인 ‘피에르 르탕’의 방에 들어가면 월계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산뜻하면서도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이다. 향은 작가가 그려내는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섬세한 색채, 그의 방을 엿보는 듯한 시선의 그림과 어우러진다. 그의 취향이나 성격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장면 둘, 일상에서 피어난 가장 순수한 열망을 포착하다

언스킬드 워커의 작품은 암실 같은 방에 작품에만 조명을 두었다. 덕분에 그림만이 환히 빛났다. 마치 사진을 찍는 것(혹은 그려질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캐릭터들은 한껏 치장한 모습이다. 사람이 마음을 다치게 되면 겉모습에 치중하게 된다. 마음이 공허하니 다른 곳에서 채울 구실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듯 인물들은 자신과 그 주변에 가장 화려한 것들만 허락했다. 서늘한 눈빛을 하고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응시하는 캐릭터들.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포즈. 이에 반하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색채. 프레임 속 아름다운 인물이 되기 위해 공들인 그들의 흔적은 서글프면서 대담했다. 상처와 아픔이 아름다움으로 태어나는 순간, “아름다운 것은 잔인하다”라는 말이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언스킬드 워커의 일상에서 영감을 불어넣는 대상은 ‘인물’. 그 중에서도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는 인물들, 혹은 상처를 받은 인물들을 조명하여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인물과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언스킬드 워커의 작품을 보니 그녀의 열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담담한 시선이 돋보였던 엄유정 작가의 작품. 그녀의 영감은 친숙한 듯 낯선 그녀가 경험한 모든 풍경이다. 여행지에서 포착한듯한 인물들의 모습, 그녀가 재해석한 나무와 잎의 형태.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이처럼 작가가 가진 가장 순수한 열망은 그들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것, 시선이 닿는 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작가마다 표현과 기법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들의 가장 순수한 욕망인 ‘그리고자 하는 마음’을 들여다본 셈이다.  

 

장면 셋, 발걸음을 멈추면 풍경이 된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가 작가들의 세계를 여행하는 만큼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이해하는 듯 이번 전시회는 20대가 좋아하는 비주얼 전시와 포토존의 느낌을 놓치지 않았다. 심플한 작품부터 화려하고 키치한 작품까지 눈에만 담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기도 했다. 공간에 알맞게 배치된 오브제, 곁에 머물며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빛과 그림자는 사진에서 또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입장 전, 그림자를 이용해 방문객의 실루엣을 찍을 수 있는 스크린을 지나치면 본격적으로 전시가 펼쳐진다. 이번 전시가 사진을 염두 해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티 스튜어트의 방에서는 거울을 사용하여 톡톡 튀면서도 유머러스한 장난 같은 낙서들이 채워져 있었다. 작품은 거울과 반사되어 여백 없이 이어졌는데, 이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으니 마치 애니메이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했다. 

오아물 루는 이번 전시에 전면으로 걸린 작품의 작가이다. 흐드러지게 펴있는 연분홍 꽃밭에서 바람을 맞서며 걷는 신사와 강아지가 인상 깊다. 작가 특유의 풍경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이 화사한 색채와 어우러져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봄과 잘 어울리는 오아물 루의 작품은 유독 관객들의 발걸음을 오래 묶어둔 작품이기도 했다. 따뜻한 그림을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을 보니 그마저도 여행에서 포착하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I draw :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미술전시회를 보고 나면 좀처럼 그림을 본 느낌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가 속해있던 장면, 해당 작가의 일상을 훔쳐본 느낌이 강하다. 각 작가마다 콘셉트를 최대한 살린 전시실, 거기에 공감각적인 자극을 더해 작가가 없어도 그들의 존재와 시선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전시’하면 떠오르는 어려움이 덜하고, 아티스트 본연의 가장 순수한 열정을 ‘그리기’라는 주제로 부담을 낮춰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지루해진 일상에서 작은 재미를 찾고 싶은 사람, 오랜만에 전시회를 찾는 사람, 다양한 신인작가와 그 열정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번 주말 당장 디뮤지엄으로 향해보자.

 

‘I draw :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전시회 정보

- 전시 기간 : ~2019.09.01
- 장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29길 5-6 디뮤지엄 
- 입장료 : 성인 : 12,000원, 학생 : 5,000원, 어린이 : 3,000원 
- 에디터 추천 전시회 관람 TIP
: 1. 대림미술관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후 <전시소개>, <작품소개> 참고, 디뮤지엄제공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 참여 
2. 디뮤지엄 굿즈샵에서 15,000원 이상 구매 시 디뮤지엄의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전시회 티켓 증

사진 : 에디터 소장사진, 디뮤지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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