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시회, 더뮤즈 : 드가 to 가우디 9인의 거장을 만나다
서울 전시회, 더뮤즈 : 드가 to 가우디 9인의 거장을 만나다
  • 강혜라 에디터
  • 승인 2019.10.02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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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한 명의 인간으로 다가올 때
더뮤즈 : 드가 to 가우디

역사 뒤편으로 사라질 뻔한 존재들이 그림으로 태어난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숨을 쉬고, 말을 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죽은 과거를 실존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뮤즈’는, 단어 자체가 지닌 의미인 ‘예술의 여신’,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특별한 존재’를 넘어서는 독특한 함의를 지닌다.
작가에게 뮤즈란 역사를 대변하는 ‘시대정신’이며, 존재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을 줄 아는 ‘선견지명’이며, 수천 번의 붓질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며,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작품으로 그려냈던 ‘집요함’이다.
실체가 없었던 뮤즈가 인간의 감정을 토대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날 때, 작품을 보는 우리는 고마움과 경외를 느낀다. 서울 전시회 ‘더 뮤즈 : 드가 to 가우디’는 그런 의미에서 거장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전시다.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화가의 큰 계획과 따뜻한 감성, 그리고 예리한 지성까지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서울숲으로 향했다. 

 

거장이 한 명의 인간으로 다가오다

거장은 늘 천재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늘 작품으로만 그들을 만나니 당연했다. 그들이 품고 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그림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노력들은 예술가의 존재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다. 우리가 모두 누군가의 팬이듯이, 거장들도 화풍과 세계관에 있어서 다른 예술가를 흠모하고 닮고자 노력했다. 이는 밀레와 고흐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밀레의 그림 <만종>을 ‘시’라고 일컬었던 고흐. 그는 그림을 독학으로 공부하며 밀레의 그림을 자주 따라 그리곤 했다. 우리에게 고흐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하지만, 초기의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고 그의 전기를 읽으며 예술적 확신과 영감을 키워나갔다. 신기한 점은 두 예술가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 밀레의 작품을 90여 점이나 소장하는 팬이자, 고객이었던 에밀 가베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시를 꾸렸고, 이를 우연히 보게 된 고흐가 밀레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다. 

같은 작품이라도 부드러운 표현이 돋보이는 밀레의 그림과 달리 고흐는 투박하면서도 눈부신 색감으로 농부들을 표현했다. 밀레가 그랬듯 고흐 또한 자연과 농부들의 삶을 담기 위해 프랑스 남부 아를로 떠났다. 그렇게 위대한 화가도 다른 거장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신을 완성해 나갔고, 결국은 작품을 모사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나갔다. 

 

출처: vangoghmuseum.nl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닐까. 농부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들의 삶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밀레와 달리, 고흐는 사실적이고 극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그려냈다. 거칠고 어두운 색감을 가감 없이 사용하여 그려진 농부들. 노동 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정직한 방식으로 자급자족하는 그들의 모습은 회화적 화려함이 없어도 그들의 삶 자체가 ‘아름다움’임을 이야기한다. 그가 밀레를 닮아가고자 노력했던 모습, 종국에는 우상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독특함을 남긴 고흐의 모습은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이다. 


명화를 현실로 끌어들이는 미디어 아트

상상 속 영감이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이 다시 살아 움직인다면? 이번 서울 전시회 ‘더뮤즈 : 드가to 가우디’는 명화를 3D 영상이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키네틱 센서 등을 통해 생동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가장 먼저 만났던 것은 점묘법으로 유명한 ‘쇠라’의 그림. 그는 이전 인상파보다 정제된 색채와 절제된 빛으로 그림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수만 번의 점을 찍어가며 색을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실제 그 무수한 점들이 흩어지고 모이는 영상을 감상하니 그의 노고와 점묘법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우디는 건축가인 만큼 그의 작품을 모형이나 그림으로 보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었다. 대신 이번 전시회에서는 가우디 특유의 양감과 곡선이 느껴지는 모형 위에, 다채로운 색의 빛을 투영시켜 독특하고 화려한 가우디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에 가면 이 신비한 건축물들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하니, 훗날 스페인 여행 때 가우디의 작품을 꼭 감상할 수 있기를. 

밀레의 그림은 3D 영상으로 표현됐다. 마치 시골의 전원을 여행하는 것처럼 드넓은 땅이 속도감 있게 펼쳐져 탐험하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갈대 모형과 하늘 사진 또한 전시실을 감싸고, 거기에 건초에서 나는 약간의 시큼하고 건조한 냄새가 더해지니 그가 평소 그리고자 했던 시골의 풍경과 향을 만끽할 수 있었다. 

 

현대와 닮아 있는 그때, 19세기

출처 : meetmymuse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어려운 일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때’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이어지는 지금, 칠십 대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19세기의 거장 앙리 마티스를 만났다.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야수파’ 혹은 그 어떤 화풍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 화가’였던 마티스. 70대에 접어들자 십이지장암 수술과 쇠약해진 건강으로 인해 붓을 들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조수의 도움을 받아 가며 ‘종이 오리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추상적 표현이 담긴 그의 종이 오리기 작업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세계가 되었다. 실제로도 마티스는 이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이전 그림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취할 수 있음에 기뻐했다고 한다. 흐르는 시간과 변하는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멋진 도전을 노장의 화가. 그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도전의 가치를 설파한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은 신비롭고 우아하다. 무하의 그림이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다면, 당장 어제 그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되었다. 곡선과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시선을 먼저 사로잡고, 풍만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인물을 통해 무하는 뮤즈에게 ‘캐릭터’를 부여했다. 여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할 법하고, 타로 카드에 그려진 그림처럼 묘한 느낌을 준다.

출처 : muchafoundtion.org

이러한 무하의 작품에 아름다운 표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그려낸 무하의 대표적인 작품 ‘슬라브 서사시’는 이전의 미화적인 그림과는 전혀 다르다. 종교적이면서도 잔인한 표현이 돋보이는 스무 점의 작품은, 자신의 고국인 체코의 자긍심을 위해 표현 기법까지 바꾸며 그려낸 슬라브족의 대서사시다. 민족의 탄생과 일대기에는 당연히 시련과 어두움도 있을 터. 무하는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슬라브 민족의 고통 이후에 깃드는 평화와 번영을 더욱 극화시킨다. 

무하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뮤즈’로 삼았던 것처럼, 우리가 일상을 사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가 속한 가정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같이 출근할 때, 부조리한 뉴스를 보면 함께 분노하고 걱정할 때, 문득문득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나의 무지를 참아주며 지켜봐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떠오를 때. 그 감정을 발로로 삼아 앞으로 살아갈 힘과 선의의 힘을 키워 나간다. 그러니 우리의 영감 또한 거장과 다를 바 없이 일상에서 온다. 예술가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을 수천 번의 붓질로 대변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 또한 하나의 작품이다. 

 

다른 전시회보다도 거장들의 스토리와 성장,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던 서울 전시회 ‘더 뮤즈 드가 to 가우디’. 이번 주말에는 8명의 거장과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더뮤즈 : 드가 to 가우디 전시 정보

 

전시 기간: 2019년 5월 21일 (화) ~ 2020년 2월 16일 (일)
전시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더 서울라이티움)
관람 시간: 오전 11:00 ~오후 08:00
관람 요금 : 성인 15,000원, 청소년 11,000원, 어린이 9,000원, 특별할인 8,000원

 

사진 : 에디터 소장사진, 인터파크(포스터), vangoghmuseum.nl(작품 사진), meetmymuse(작품 사진), muchafoundtion.org(작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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