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시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展 리뷰
서울전시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展 리뷰
  • 강혜라 에디터
  • 승인 2019.12.23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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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욕망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 사회에 영원히 유효할 메시지를 던지는
바바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 -

45년생, 70대의 노장. 아시아 최초 개인전. 브랜드 ‘슈프림’ 로고 디자인에 영감을 준 작가. 바바라 크루거는 인상 깊은 이력을 꼽자면 얼마든지 꼽을 수 있는 독특한 타이틀을 거머쥔 작가다. 

작가는 청구서 발행하는 업무로 일을 시작했고,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파슨스디자인학교에 들어가 생애 처음으로 앞치마를 입지 않고, 거실을 닦지 않는 본인의 직업을 가진 여성 다이안 아버스를 만났다. 다이안 아버스는 사진작가이자 대학교수로 활동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잡지 보그, 하퍼스바자 등의 잡지사에서 사진가로 활동했다. 

이후 다이안 아버스는 바바라 크루거의 직업적 모델로서의 길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했고, 이후 바바라는 10년간 잡지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다. 마드모아젤이라는 잡사의 세컨드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들어간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리드 디자이너가 됐으니 그녀의 실력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지금이야 잡지의 힘이 많이 쇠약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잡지는 대중매체로서 힘이 강했다. 때문에 많은 잡지들 사이에서 표지 하나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중요했다. 

바바라 크루거는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지면을 하나의 ‘공간’처럼 인식하며 광고 디자인, 대중매체로서의 메시지 전달, 텍스트와 사진과의 조합 등을 연구하는 훈련을 하며 그녀의 현재 작품의 근간이 된 경험을 쌓아 나간다. 그래서 바바라의 작품을 보다 보면 미술 작품임에도 난해하거나 어렵다기보다는 대중매체처럼 보다 직관적이고, 모던한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건 대다수가 8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2019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작가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강렬한 색채의 텍스트와 사진으로 조합해 질문을 직접 내리꽂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이러한 작업들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미술 작품보다 거대한 크기로 제작되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선사한다. 

전쟁, 권력, 페미니즘, 소비와 같은 다양한 카테고리를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소비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었다. 사실 잡지라는 게 욕망이랑 크게 결부되어 있지 않나. 잡지를 펼치면 온갖 것들을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준 후 사라고 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작가 본인이 비판적인 의식이나 회의감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중 가장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한 건 작품 Face It이었다. 얼마 전 나는 사고 싶었던 앵클부츠가 있었다. 거리에서 스키니진과 어우러져 타이트하게 발부터 발목을 감싼 형태가 유난히 눈에 들어올 때. 회사에서 누군가 앵클부츠를 신고 또각, 또각 거리는 소리를 선명하게 내며 걸을 때. 뒤적거리던 인터넷 쇼핑몰에서 앵클부츠를 세일한다는 광고를 전면으로 띄웠을 때였다. 거기에다 날씨 때문에 발목이 좀 시리기도 하던 참이었고.  

앵클부츠를 사서 신으면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사고 나면 벨벳 소재의 롱스커트와 부츠보다 길이가 살짝 긴 검은 스타킹 소재의 양말과 함께 신어야지, 하고 계획까지 세웠다. 
드디어 월급이 들어왔다. 나는 앵클부츠를 샀다. 택배를 뜯으며 기분이 좋았다. 앵클 부츠를 신어봤다. 내가 생각한 그림이 나왔다. 어울리는 옷을 이리저리 매치해가며 몇 번 신었다. 괜찮았다. 잘 샀으니 뿌듯했다. 

그런데 그 게 끝이었다. 앵클부츠는 내가 사길 원했던 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했다. 분명 꼭 사고 싶었던 물건이었는데. 시간이 하루 이틀만 지나니 그 소비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물건을 사면 늘 이런 식이었다. 당시에 나는 이 물건을 무척 갖고 싶어 하는 상태였는데, 막상 물건을 사고 몇 번 입거나, 쓰고 나면 그 이후에 약간의 허망함과 실망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잦았다. 

그러나 막상 소비하고 나면 주는 만족감은 분명 컸으므로, 약간의 불편하면서도 정의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은 외면하곤 했다. 그 감정의 원인을 마주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으므로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러한 감정의 원인은 작가가 만들어낸 메시지를 통해 제목처럼 직면하게 됐다. Face it의 네 작품은 재킷 안에 있는 레이블을 보여주는데, 재킷 안감에 붙은 레이블의 문구와 전체적인 색감만 달라지는 형태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이 값 비싼 옷은 당신을 부유하거나 아름답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 멋진 의상이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님을 말해준다, 
환상적이게 멋진 이 외투는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 옷은 당신을 최소 20년은 젊어 보이게 만든다

서울 전시회,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展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가장 큰 틀은 ‘욕망의 근원’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부여함에 있다.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했던 앵클부츠는 사실 100% 내가 사고 싶은 마음에 한 소비라고 볼 수 없다. 거리 곳곳에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신으니까 나도 신는 게 당연해서, 부츠를 신고 들리는 또각 거리는 소리가 주는 묘한 권력감이 좋아서, 나도 소비를 통해 그 권력에 어느 정도 편입했다는 만족감 때문에, 소비를 통해 내가 스스로 키가 더 크고 세련되어질 수 있을 거라는 환상 때문에. 사실은 ‘보이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소비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을 때 마주한 또 다른 작품 ‘Good Buy’는 그 생각에 기름을 부으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잘 샀다’. 잘 샀다고 생각했겠지. 사실은 무언가를 소비하고자 했던 마음은 너의 온전한 욕망보다는 외부의 시선에 굴복해 이어진 선택이었음을, 이를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늘 같은 소비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그러면서도 남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끊임없이 저질렀던 나의 소비는 좀 더 거칠게 말하면 시선의 압박감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기도 했다. 

소비가 어느 정도의 두려운 감정에서 온다는 건,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라는 작품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이 작품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적인 시선에 대한 성 담론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미술백과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관음’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를 들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라는 1860년대의 오래된 작품을 보면, 풀밭 위의 신사들은 모두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으나 여성은 혼자 발가벗고 유일하게 관람객을 똑바로 응시하며 묘한 미소를 짓는데, 이 모습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불편함과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바바라의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한 억압적인 시선을 받는 대상을 사람 대신 ‘석고상’으로 표현했는데, 왜 사람 사진을 쓰지 않았을까 고민해보니 석고상이 대상화된 느낌을 전달하는데 더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석고상은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측면을 비스듬히 바라보며 문구와 어우러져 정말로 뺨을 맞은 후 고개가 돌아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립스틱, 구두, 파운데이션, 다이어트 식품, 브래지어 등 많은 여성 용품들이 자신의 본래 욕망보다도 관음의 대상으로서 보는 이의 만족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사용해왔다. 나도 이와 같은 물건들을 사용해 본적이 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만 앵클부츠 소비와 비슷한 느낌으로 구매 후 늘 조금씩 후회나 오묘한 불편감을 느끼곤 했다.

사진출처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어떻게 보면 남들과 비슷해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구입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남들이 원하는 것 이상을 충족시켜 시선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구입한 물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바바라의 작품은 메시지와 사진 하나만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진출처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두 가지 작품에 대해서 주로 언급 했으나, 직접 가서 보면 그녀의 작품들은 다양한 미술적 시도와 변주로 인해 방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0m 길이의 달하는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 소설의 ‘자기만의 방’, 조지오웰의 ‘1984’에서 발췌된 텍스트 사이를 거닐며 텍스트가 주는 함축성, 압축성을 느낄 수 있다. 

사진출처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영상 방에서는 마치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면 다양한 장면이 나오듯이 영상이 사방에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틀어진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 고정관념, 폭력, 광기 등 강렬한 감정을 주로 다룬다. 

사진출처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크루거의 작품은 실제로 집회의 포스터나 광고 포스터로 쓰인 작품이 많기 때문에 선전적, 선동적 느낌이 나기도 한다. 때문에 메시지는 더 강렬하게 다가오고 우리 일상을 파고들 것이다. 거대한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우리의 일상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서울 전시회,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展은 어떨까?

<서울 전시회,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展 정보>

기간 : 2019. 06. 27 (목) ~ 2019. 12. 29 (일)
장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주최 :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요금 : 성인(만 19세 이상) : 13,000원 / 학생(7~18세), 만 65세 이상 : 9,000원 / 어린이(만 3~6세), 국가유공자, 장애인 : 7,000원

 

사진 : 에디터 소장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네이버 미술백과

더유니브 강혜라 에디터 webmaster@theuni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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