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술 전시회, '내 이름은 빨강머리앤' 에디터 관람기
서울 미술 전시회, '내 이름은 빨강머리앤' 에디터 관람기
  • 신수지 에디터
  • 승인 2020.02.07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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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멋진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게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어린 시절, 초록지붕 집에 살던 빨강머리 친구가 있었다. 풍부한 감수성을 뽐내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던, 소녀의 또렷한 눈빛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우리에게 추억 속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빨강머리 앤(원제 ‘Anne of Green Gables')’은 100여 년 전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가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됐다.

시간이 흘러, 지금 빨강머리 앤을 소재로 갤러리아 포레에서 진행 중인 서울 미술 전시회에는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앤이 바라보던 세상을 깊게 마주할 수 있는 문화 예술 융복합 전시다. 밝고 명랑한 아이로 기억되던 그녀의 아픈 상처와 콤플렉스, 아름다운 성장의 과정까지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 특히 그간 2차원 세계에서 만나보던 매력적인 원작을 3차원의 새로운 공간으로 연출해 즐거움을 선사한다.

 

끝에 E가 붙은 빨강머리 ANNE

전시는 소설 속 흐름에 따라 12개의 섹션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섹션은 마담롤리나, 노보듀스, 안소현, 손민희, 박유나 등 감각적인 아티스트들의 시선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그 첫 관문인 ‘프롤로그’에서는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때 그 이름이 마음속에 그려진다”며 'e'가 붙은 ‘앤(Anne)’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는 앤을 보게 된다. 앤의 개성과 주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 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리플릿을 집어 들고, 그녀를 창조한 작가도 만나볼 수 있다.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거친 느낌의 일러스트 영상과 함께 고아로 살아온 앤의 상처와 직면하게 된다. 아동이 보호받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며, 굴곡진 삶을 겪었을 그녀를 응원하게 되는 순간이다.

 

공상가의 공간과 눈부신 것들

“가난하다는 게 위안이 될 때도 있어요. 멋진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 상상할 여지가 하나도 없으니까.”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공간을 보며, 이상하게도 울컥하게 된다. 상상 속에서 앤이 그렸을 법한 화려한 드레스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

하지만 오히려 ‘상상할 거리들이 있어 두근거린다’며 즐거워하고, 자신이 마주하는 풍경에 낭만적인 이름을 붙여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점차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특히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음악과 따뜻한 자연이 담긴 영상이 그런 감정을 부추긴다. 기괴하게 꾸며진 앤의 상상 속 ‘유령의 숲’도 귀엽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단짝 친구 다이애나와의 추억이 담긴 공간은 특별한 향과 함께 꾸며져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빨강머리와 길버트

‘빨강머리’ 섹션은 전시의 클라이막스로 꼽힌다. 앤의 가장 큰 콤플렉스인 빨강머리를 표현한 붉은 공간에 3.6m 크기의 조형물이 설치돼 강렬한 느낌을 준다.

종이에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쓰고, 지우개로 지워 없애는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도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앤의 빨강머리를 ‘홍당무’라 놀렸다가 미움을 산 길버트를 만날 수 있는데, 원작에서 길버트는 이야기가 거의 끝날 즘이 되어서야 앤과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교실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곳은 두 사람의 속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야망을 품는다는 건 멋진 일

앤은 자신을 못생겼다 여기며 ‘똑똑한 것보다 예쁜 게 훨씬 낫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가족과 함께 성장해나가면서 ‘자신다움’에 눈을 뜬다. 학업에 열정을 갖고, 소녀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멋진 어른이 되겠다는 포부도 갖게 된다.

이 섹션에서는 소위 ‘힙(hip)’한 느낌을 주는 뮤직비디오가 재생된다. 당당한 포즈를 취하며 ‘난 자신 있어. I’m just me’라 말하는 앤의 노래가 강렬하게 다가와 에디터는 한참이나 발길을 떼지 못했다.

 

길모퉁이에 선 당신에게

삶은 때로 뜻밖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앤은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당초의 계획과 달리 초록 지붕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단지 꿈의 방향이 바뀐 것뿐이라며, 자신이 새로운 길모퉁이에 서있다고 말한다. 길모퉁이를 돌면 나타날 자신의 새로운 미래가 궁금하고 설렌다고. 

서울 미술 전시회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의 마지막 공간은 원작에서 그려지지 않은 앤의 다양한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아름다운 작품들처럼, 우리도 삶의 모퉁이를 마주할 때 그 너머에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수 있기를. 앤의 든든한 지지자 매튜가 말한 것처럼, 조금의 낭만을 간직한 채로.

 

추억 속 그 소녀를 다시 꺼내어보며 

기억 속 그 빨강머리 소녀는 언제나 즐겁게 재잘거리던 아이였는데, 다시 만난 그녀는 낭만과 상상력으로 힘든 순간들을 견뎌낸 어른이었다. 그녀의 성장기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삶을 변화시킬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길모퉁이를 지나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갈 앤들에게 이 서울 미술 전시회를 추천한다.

전시명 : 내 이름은 빨강머리앤 전
전시장소: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 B1 MMM
전시기간: ~ 2020년 4월 5일 (매주 월요일 휴관)
운영시간: 10:00 ~ 19:00 (18:00 입장 마감)
입장료: 성인 15,000원 / 학생 12,000원 / 유아 10,000원 (36개월 미만 무료 입장)

사진·영상: 에디터 소장, 미디어앤아트(포스터)

 

더유니브 신수지 에디터 webmaster@theuni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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