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달과 6펜스 - 윌리엄 서머셋 모옴
서평, 달과 6펜스 - 윌리엄 서머셋 모옴
  • 이석현 에디터
  • 승인 2020.03.1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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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그리스도와의 자화상_폴 고갱(1890 또는 1891)

 

나는 욕망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문제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 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두드려 보고 깨고 돌파해야 한다. 정재승 교수가 말한 ‘세상에 대한 지도’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남이 그려준 지도를 들고 다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도를 개척하려는 행동력이 더 중요 것이다. 

시도하지 않고서는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알아내지 못할 테니까. 심각하면서도 누구에게나 평등한 문제는 시간이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시간 때문에 욕망은 제한된다. 삶은 욕망의 범위를 축소하도록 강요한다. 욕망하지만 뛰어들 자신이 없으므로 욕망의 가치를 스스로 하락시키며 현재의 만족에 따른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

 

<달과 6펜스>는 영국 작가 윌리엄 서머셋 모옴이 191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폴 고갱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 책은 오래도록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이 책의 키워드는 예술, 욕망, 떠남, 자유, 이기라는 단어로 대표된다.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가졌다. 무난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던 스트릭랜드는 느닷없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가족에겐 충격이었겠지만 자신에겐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스트릭랜드는 욕망 한 가지를 취함으로써 나머지를 모두 버린다. 가족이건 자식이건 오랫동안 몸담은 직업이건 가차 없이 떠남을 선택함으로써 버린다. 그는 욕망을 찾기 위해 야만인이라도 된 듯 행동한다. 그리고 관습처럼 굳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다. 그가 바라는 삶의 최전선엔 예술(미술)이 서 있다. 

그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욕망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다. 40대 중반에 뜬금없이 화가가 되겠다고 선포한 스트릭랜드. 아무도 그의 예술적 욕망을 몰랐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길을, 욕망을 향해 전진한다면 늦은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고, 오직 한 길을 향해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화가이든 시인이든 음악가이든,
예술가는 숭엄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장식물로써
우리의 심미감을 만족시켜 준다.

하지만 심미감이란
성 본능과 비슷해서 일종의 야만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는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파리 후미진 골목에서 광기에 휩싸인 채 그림을 그리다 타이티로 떠나는 과정을 소설은 그린다. 그 과정에서 스트릭랜드는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봐 준 더크 스트로브를 배신한다. 그의 아내를 탐하고 부정을 저지르지만 죄의식은 없다. 

단지 자신의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한 목적으로서 그는 친구의 아내를 탐하고 버린다. 그 때문에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까지 하지만 역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타이티 섬으로 떠나고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다. 영혼이 자연과 하나 되는 놀라운 경험을 거듭하며, 경이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작품을 남긴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고갱의 작품을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달과 6펜스, 달은 이상향이고 6펜스는 현실이다. 달을 얻으려면 현실을 버려야 하고, 현실에 치중하면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이론을 서머싯 몸은 고갱의 삶을 빌려 설명한다. 이상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와 비슷하다. 그에게 현실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허상에 불과한 삶에 추종하는 것은 그의 의지와 정반대의 세상에 불과하다. 

그는 인간이 창조한 시공간을 초월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 바로 예술, 그림을 미치도록 그리는 일이었다.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그 전환이 광신자에게처럼 단숨에, 사도들에게처럼 광포하게 왔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은 스트릭랜드가 미쳤다고 반문한다. 어떻게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떠날 수 있냐고. 하지만 격변은 다소 과격한 모양새를 갖출 수밖에 없다. 예술이란 격변, 대지진과 같은 게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려면, 그만큼 낭비한 시간을 채우려면, 삶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태도와 각오 없이는 도달이 불가능한 세계가 아닐까.

물론 스트릭랜드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를 도와준 스트로브를 배신하는 배은망덕한 인물로 그렸을 테니까. 하지만 예술적인 삶을 지향하는 스트릭랜드에겐 사회적인 시선과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 예술이 지향하는 삶이란 스트릭랜드 같은 삶일까.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삶일지라도 단숨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욕망에 충실하는 자세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삶을 보고 열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나는 열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예술이란 삶 자체가 아닌가, 열정은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가 욕망하는 지향점, 아니 그의 영혼의 부름에 답하는 방식에 불과했으니까.

 

달과 6펜스
저자 윌리엄 서머셋 모옴
출판 민음사
발매 2000.06.20.

 

이 책을 읽고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먹고사니즘에 충실한 삶이야말로 당장 우리 눈앞에 떨어진 현실이 아니냐고, 나는 그렇기 때문에 돼지 같은 삶에서 더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자신의 예술적 잠재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누구나 스트릭랜드처럼 야만인이 될 자격이 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돼지처럼 살다 죽을 순 없으니까. 그 방법이 바로 욕망이라는 단어에게 솔직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와 우리가 다른 건 바로 욕망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그 차이가 아닐까. 아주 작은 차이가 고갱과 우리를 만든 게 아니냐고. 그리하여 나는 보다 욕망을 따르겠다고 선포해본다. 더 부서지고 깨지고 충돌하더라도. 각자가 펼쳐나갈 예술이란 게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으며.

 

작가 : 윌리엄 서머셋 모옴(서머셋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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